희망의 꽃을 피우는 ‘꽃보다 사람들'
강재규 | 입력 : 2009/02/23 [13:07]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 아래 어느 산업분야라 해서 온전할까. 그 가운데서도 특히 국내 꽃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고 아우성이다. 주범은 경기 위축과 함께 급등하는 환율이다. 경기 위축으로 꽃 소비가 급속도로 얼어붙는다는 것이고, 하루가 다르게 뛰는 환율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화훼 자재들의 가격이 크게 치솟았기 때문이다.
화원을 하는 이들은 “10년 전 IMF 때는 그나마 위안 삼아 꽃 선물을 많이 해서 어느 정도 팔렸는데 요즘은 IMF 때보다도 잘 팔리지 않는다”며 이구동성이다. 화훼농가 쪽 사정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난방비와 원자재 가격을 감당할 수 없어, 지난 겨울 경작을 포기하고 문을 닫아둔 농가가 한두 곳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사정 속에 우리나라에서는 오는 4월, 화사한 봄 내음 속에 두 개의 큰 꽃 축제가 펼쳐진다.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서 펼쳐지는 2009 안면도 국제꽃박람회와 경기도 고양에서 열리는 전통의 고양꽃박람회가 그것이다.
전자는 국제원예생산자협회(AIPH)와 정부 공인 국제꽃박람회라는 점이고, 후자는 그간 수차례 이어져온 기반 위에 펼쳐지는 비즈니스형 국제꽃박람회다. 다시 전자가 지난 2007년 말 서해안 원유 유출 사고로 뒤범벅이 되었던 태안을 120만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복구 노력에 힘입어 다시 꽃으로 살아나는 모습으로 연출하고자 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면, 후자는 우리의 원예산업을 일으키고자 하는 취지에서 치르는 꽃축제의 성격이 강하다.
또 전자가 150억 원을 들여 110만 명의 관람객 유치를 목표로 하는 점이라면 후자는 70억 원의 예산으로 총 68만 명의 관람객 유치를 목표로 한다는 규모 면에서의 차이점도 있다. 특히 안면도 국제꽃박람회는 천혜의 관광지 안면도가 기름유출로 인한 대참사를 겪었던 곳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절망의 태안 앞바다를 희망의 바다로 되돌려 놓은 전국 120만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 노력은 이미 전 세계인들을 감탄케 한 바 있기 때문이다.
버려진 땅을 꽃들의 낙원으로 만든 사례는 세계에 여러 곳이 있다. 캐나다 부차트 가든은 대표적이다. 밴쿠버 주변의 빅토리아라는 도시에서 북쪽으로 21km 떨어진 외진 곳이지만 세계적인 테마식물원으로 환생했다. 부차트라는 여성이 남편인 로버트 부차트의 시멘트 사업장이었던 옛 석회암 채석장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꿈의 정원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지난 1990년 가장 먼저 플라워 쇼를 개최한 일본에서 볼 수 있다. 오사카 국제꽃박람회가 그것인데, 쓰레기 매립장 위에 행사장을 조성, 공해의 오명을 벗고 아름다운 꽃의 도시로 뒤바꿔 놓았다.
그러한 면에서 본다면 안면도 국제꽃박람회가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지난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유리의 규사 채취장으로 수십 년간 쓰이면서 파헤쳐 져 있던 안면도 ‘꽃지’ 해변이 이미 지난 2002년 꽃박람회를 통해 꽃들의 천국으로 거듭났고, 이번에는 기름 범벅이 됐던 태안 앞바다의 아픔을 딛고 다시 한번 꽃들의 낙원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 없다는 말도 있지만, 네덜란드, 일본 등 세계 원예 선진국들의 희귀 신품종 꽃들을 보면서 꽃의 향기에 빠져보거나 문화적 여유를 느끼고, 앙증스러운 우리 산야의 자생화들을 보면서 천주의 오묘함을 만끽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아니 그보다, 꽃지 해변에 물든 꽃을 바라보며 희망을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대부분의 초화류들은 기온이 적당하고 생육조건이 맞으면 꽃피울 생각을 않는다. 식물학자들은 이를 생육 성장(生育成長)만 할 뿐 생식 성장(生殖成長)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반면에 호주의 식물 가운데에는 ‘그래스트리’라고 하여 불에 타야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다.
거친 환경, 위기 상황을 감지한 나무가 종족보존 본능이 작동, 서둘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이다. 서늘한 가을이 오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도 같은 이치다. 기독교 성경에서도 사도바울은 ‘나는 날마다 (육이) 죽노라’ 했듯, 어려울수록 희망과 소망의 꽃을 피우는 것이 ‘꽃보다 사람’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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