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일도 반복하면 위대한 것이 되는 법
강재규 | 입력 : 2009/02/04 [08:27]
과거엔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고 했지만 요즘은 좀 달라진 것 같다. 사회복지제도가 워낙 발달해 이른바 차상위계층이라고 부르는 저소득계층에 이르기까지 각종 정부 지원이 이뤄짐으로써 최소생계 유지는 할 정도는 됐다. 그렇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그 가난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사회구조가 아닌 것도 사실이다. 이른바 중산층으로의 진입도 그럴진대 우리 사회의 1% 부류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최상위 ‘부자클럽’에 가입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국민소득 2만불에 접근한 우리의 경우도 그런데 하물며 전세계 80%에 달하는 빈곤층에 그러한 주문을 한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한 사람인 모하마드 유누스같은 이는 이들 빈곤층에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얼마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펴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안겼던 것으로 유명하다. ‘세상을 바꾼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의 저자 존 엘깅턴이 유누스의 말을 소개한 것을 보면 흡사 가난한 사람들은 곧 ‘분재나무 사람(pot-planting people)’이란 주장이다.
“나에게 가난한 사람들은 분재나무와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의 씨앗을 작은 화분에 심으면 우리는 단 몇 인치짜리 후예를 얻을 뿐입니다. 씨앗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뿌리내릴 땅이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고 전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분재와 같은 사람들이란 얘기여서 우리네 서민들로서는 다소나마 위안이 된다. 그들의 씨앗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다만 사회가 그들에게 성장할 기반을 내어주지 않을 뿐이란 것이다.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인데, 억눌렸던 에너지와 창의성의 속박이 풀리기만 하면 가난은 매우 빠르게 사라질 것이란 매우 소망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기름진 토양, 적당한 수분, 햇살이 잘 드는 환경에서 자란 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실한 열매가 많이 열리고, 반면에 척박하고 그늘진 곳에서 자란 나무는 잎이 시들시들하고 열매를 구경하기조차 힘들다는 것은 경험론적으로도 아는 사실이다.
일견 환경결정론자에 치우친 얘기같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하기야 우리 사회가 누구나 태어나면서 동일출발선상에서 공평하게 출발하는 것이 아니므로 환경탓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현대그룹의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음에도 번쩍이는 아이디어와 배짱, 강한 실천력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을 일궜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맨손으로 전무후무한 성공신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환경을 탓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는 증거다. 그 점에서는, 비록 지금은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경남기업 성완종 회장도 대동소이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입지전적 인물 그대로다. 난 그래서 충남이 낳은 인물 성 회장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단돈 1천원으로 2조원대의 거대 경남기업을 일군 CEO의 삶을 놓고 본다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굴껍데기처럼 들러붙은’ 말할 수 없는 가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입지전적 인물이란 점과, 지독한 가난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형성된 자수성가형 투지, 그리고 겸손할 줄 안다는 대목에서는 존경심이 우러난다.
홀어머니와 동생 셋을 책임져야 했던 소년 가장 성완종은 보릿고개를 넘긴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밥 굶기를 ‘흔히 밥 먹듯’ 했다. 눈물 젖은 밥을 먹는 때는 차라리 행복했다. 초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서울로 올라온 그는 오죽했으면 가족 생일 아침에도 생으로 굶기 일쑤였을까.
그러면서도 소년 성완종은 남의 집 헛간에서 잠을 자면서 정확하게 새벽 4시면 일어나 신문을 돌리고, 신문을 돌린 후에는 약국으로 가 약 배달하는 틈틈이 신문지를 모아 파는 생활로 생계를 꾸리기도 했다고 그는 자전적 저서 ‘새벽빛’에서 회고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입지전적 인간승리를 일굴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꿈틀댄 꿈과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그 원천에는 하늘로부터 세 가지 은혜를 받은 데로 돌린다고 했다. 가난한 것, 못 배운 것, 그리고 남들보다 한 분이 더 많은 가엾은 부모 이 세 가지다. 가난했기에 근면했고, 학교에서 못 배워 사회에서 배워야 했고, 특별한 부모들 덕에 황량한 광야로 나와 스스로의 발로 홀로 서는 법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처지가 어려웠던 덕에 그는 장학사업을 비롯한 사회사업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자신이 받은 것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자신이 도운 학생들이 언젠가 다시 남들을 도와줄 것이란 굳은 믿음 때문이다.
오늘의 어려움이 있을 지라도 꿈과 비전이 있으면 다 이겨낼 수 있는 법이다. 시련은 오래 가지 않으나 시련을 이긴 사람은 오래 간다는 말이 있다. 미래를 위해 자신의 꿈과 비전을 키워간 사람들을 동서고금을 통해 많이 본다.
멀리 ‘쥬라기 공원’의 스티븐 스필버그는 단 한편의 영화로 우리나라가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해야 벌 수 있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오직 영화에 대한 비전이 그로 하여금 행동하게 만들었다. 비전은 우리들을 미래로, 이상의 세계로 잡아끄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는 것이다. 가까이, 성 회장 같은 이에게서 결코 작지 않은 희망의 씨앗을 보게 되는 이유다.
흔히 말하듯, 이들처럼 성공한 사람에겐 분명한 성공조건이 있었고 실패한 사람에겐 구구절절 별의별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환경은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서울 ‘강부자’ 자식들이 주로 다니는 사설학원이 성황을 이루고, 유명 대학들이 이들의 전유물처럼 비춰지기도 하고, 많은 경우에 있어 부(富)가 세습이 되는 반면 가난도 대물림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환경이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면 가난한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 배우지 못한 사람 등은 다 실패해야만 옳다.
기회는 뒷머리가 없어 놓쳐버리면 다시 붙잡을 수 없다고 한다. 기회가 왔을 때 재빨리 포착하여 이를 활용하기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얘기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막상 부닥쳐보면 별것 아닌 경우도 있다.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패를 점치는 능력이 때론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에서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부자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 손실이 두려워 투자를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옥조각의 대가 장주원 선생 같은 이는 ‘하찮은 일도 반복하면 위대한 것이 된다’고 했을 정돈데, 설령 대가까진 안되더라도 누구든지 자신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몰입을 한다면이야 자신만의 성공의 문은 열리지 않을까 싶다.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바라고, 그 분의 일을 아주 작은 일일지라도 하루도 쉼없이 해드리는 정성이라면 영혼육이 부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지 싶다.
강재규(姜在奎) 시사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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