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라면 세종, 정조처럼 왕의 시호가 주어지는 데 이들은 오늘날까지 군으로 호칭 되고 있으니 역사상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가 굳어져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들의 인성은 숙모를 겁탈하고 모친을 폐위시키거나 또는 동생을 살해하는 패륜적인 행위를 저질렀으나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지는 아니했다.
개인 원한, 당파 간의 싸움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한 결정이고 행위로 국가의 존망에는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두 명의 왕보다도 더 주목하게 되는 왕이 있으니 그가 바로 14대 왕 선조다. 선조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왜적이 파죽지세로 북진해 오자 한양을 버리고 평양을 거쳐 의주로 몽진, 즉 피난을 가버린 왕이다. 당시에는 왕의 안위가 곧 국가의 운명이었기에 백번 양보해서 의주로의 피난은 이해할 만하다지만 선조의 인성이 끼친 향후 조선의 국운과 운명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선조가 국가 위기관리에 있어 무능한 왕이었느냐 아니었느냐는 역사적인 논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선조의 개인적인 인성에서 비롯된 잘못된 결정은 이후 엄청난 역사적 비극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선조는 정실 혈통이 아닌 서자로서 왕위에 올랐기에 열등의식이 있었으며 타고난 심성이 시기하고 의심이 많은 듯이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전쟁 중의 이순신 장군의 파직과 원균의 중용이다. 선조는 끊임없이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이순신 장군에 대한 견제를 하며 급기야 자신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직하고 고문을 하고 감옥에 가두었으며 결국 백의 종군을 하게 한다.
이순신 장군 파직 후 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의 칠천량 전투에서의 대패 후에 다시 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은 명랑해전에서 13척의 배로 300여 척이 넘는 왜적의 배를 무찔렀다는 전설 같은 해전은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선조가 만일 이순신의 충정을 개인적인 감정을 자제하고 이해했더라면 어떠했을까? 국난은 쉽게 극복되었을 것이고 국가가 왜구의 말발굽 아래에 완전히 피폐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 하나는 같은 서자로서 세자의 위치에 서게 된 아들 광해군에 대한 시기와 견제가 훗날 후금에게 당한 국가적인 치욕인 삼전도의 굴욕을 잉태하게 된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와 분조, 즉 조정을 분할 하여 부왕을 대신, 전쟁의 최전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는데 특히 의병을 손수 지휘하여 국난을 극복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선조가 다른 왕비를 맞아 영창대군을 얻으니 세자인 광해군을 노골적으로 멀리하고 영창대군을 세자로 다시 책봉하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갑작스런 선조의 별세로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게 되고 이후 영창대군과 그 모친 인목대비를 중심으로 한 지속된 반역 움직임으로 인해 인목대비가 유폐되고 영창대군이 강화도에서 증살(蒸殺)되자 결국 이것을 기화로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쫓겨나게 된다.
광해군은 패륜적인 왕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매우 실리적이고 개혁적인 인물이었는데 그러한 면이 즉위 초기에 시행한 탕평인사, 대동법 등과 쇠퇴해가는 명나라와 강성해지는 만주족, 즉 후금 사이에서 균형적 실리적인 중립 외교를 추구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임진왜란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이런 국가적 안목이 있는 왕을 사적인 감정으로 소외시켰고 이것이 인조반정의 하나의 씨앗이 되었으며, 인조 즉위 후 국제정세를 바로 읽지 못하고 명분만을 중심 하여 친명정책으로 선회해 병자호란을 맞게 된 것이다.
조선은 다시 후금의 침략을 받아 왕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게 되고 결국 항복하여 조선 최고의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게 된다.
국가 지도자의 덕목은 모든 결정과 인재 등용 등 공적인 일에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이런 원칙은 예외가 아니다. 현재에도 얼마나 많은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개인적인 인성과 감정으로 국가통치과정을 혼란스럽게 해왔는지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비록 당파 간의 분쟁이 극도로 심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패륜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폐위된 광해군의 백성 구제를 위한 노력과 균형 실리 중립 외교의 지혜와 광해군의 부왕의 그릇된 판단과 태도, 결정의 사이에서 국가 지도자의 자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저작권자 ⓒ 조은소식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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